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페르가의 비극 (문단 편집) == 후유증 == 그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100만 명이 넘는 추도 인파가 몰려들었다. 토리노는 당시 리그 4경기를 남겨 놓은 상황이었으나 이 사고로 인해 토리노는 당시 베스트 11을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탈리아 축구협회에서는 4경기를 치르지 않아도 시즌 우승은 토리노라고 발표했지만 토리노 구단에서는 급하게 유스를 출전시켜서라도 끝까지 시즌을 진행하겠다고 나섰고 토리노의 남은 리그 4경기에서는 상대 팀도 토리노에 대한 애도 차원에서 같이 유스를 출전시켰다. 토리노의 유스 선수들은 남은 경기에서 1위를 지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선배들의 영전에 우승컵을 바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유스 선수들이 베스트 11의 공백을 메울 수는 없었고 결국 토리노는 리그의 주도권과 토리노의 대표 클럽 이미지를 라이벌 [[유벤투스]]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토리노는 이 사고 이후부터 세리에에서 그냥 그런 팀으로 사그라들고 만다. 1942-1943 시즌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2년간의 공백까지 이겨내고 파죽의 5연패를 이어가던 토리노는 사고 이후 1975-1976 시즌에 우승한 뒤로 40년 넘게 리그 우승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80년대 리그 준우승 및 90년대 코파 이탈리아 우승도 해 봤으나 이후 2부리그로 강등당하며 2000년대 와서 우승컵을 들어본게 고작 2부리그 우승컵 하나뿐이다. 2000년대 승격한 1부 리그에서도 겨우 강등을 모면하거나 10위권대에서 맴돌 정도. 당시 이 비행기 안에는 [[발렌티노 마촐라]], 마리오 리가몬티 등 당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선수들도 많이 타고 있었던지라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대표팀에게도 큰 손실로 이어졌다. 이탈리아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1950년 월드컵]]에 출전하기는 했지만 치명적인 전력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채 결국 조별 예선에서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에 밀려 탈락하고 말았다.[* [[뮌헨 비행기 참사]]를 겪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차이를 굳이 비교하자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뮌헨의 사고에서 [[맷 버스비]] 감독을 포함하여 [[바비 찰튼]] 등 스쿼드의 일부가 살아남았고 그들을 주축으로 새로 팀을 건설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시 영광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토리노는 선수와 감독 거의 전부를 잃어버렸던 관계로 그 상처가 더욱 컸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이 공백을 메우는데 무려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써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자국 팀이 졸전하면 야유나 욕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탈리아 팬들조차도 이 때만큼은 비난을 자제했다고 한다.] 역사에 만일이라는 것은 없지만 이 사고가 없었더라면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1950년 월드컵]]에서 3연패를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는데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우루과이]] 등 남미팀과 상당히 좋은 시합을 펼쳤을 것이며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1958년 월드컵]]에서 지역예선 탈락을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만일 이탈리아가 1958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더라면 독일의 18회 연속 본선 진출을 뛰어넘는 19회 연속 본선 진출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 사고 이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가 다시 세계구급 강호로 인정받게 된 계기는 [[UEFA 유로 1968|1968년 유로]] 우승과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1970년 월드컵]]에서의 준우승이었다. 그 이전의 이탈리아는 국제대회에서 별 볼일 없는 성적을 거두었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프랑스, 잉글랜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이 사고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는 에밀레 본조리니를 이 사고로 잃었고 체코슬로바키아 역시 율리우스 슈베르트를 이 사고로 잃었다. 헝가리는 어네스트 알베스타인을 이 사고로 잃었으며 잉글랜드는 레슬리 리브슬리를 이 사고로 잃었다. 이 사고가 이후 [[카테나치오]]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축구의 현재 색깔이 나오는 원인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